2018.2.17

끄적임 2018. 2. 18. 04:39

오늘로 글쓰기 삼일째다.

내일도 쓸 수 있길 바라면서..


매일 일기를 쓴다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멀리서 그런 얘길 들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피곤하고 빨리 자고싶은데 어떻게 매일 그렇게 감정이나 느낀점을 토해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자신과 마주 앉아왔을까.

일기 뿐만 아니라 매일 어떤 일을 꾸준히 이어오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

나는 매일 먹는 것만 꾸준한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하루 일기를 쓰겠다.


2월 17일(토)

남편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꿈을 꾸고 느지막이 일어났다. 

지은언니가 고사리나물이 먹고싶다고 했던 게 마음에 남아서 몇 주 전에 불리고 삶아서 얼려둔 고사리를 녹여

들기름과 마늘에 달달 볶다가 국간장으로 간 하고 파 썰어 넣고 식혀서 병에 담았다.

커피를 끓여 우유를 붓고 네 모금에 나누어 마셨다.

마음은 바쁜데 몸은 느긋해, 언제나처럼.

씻고, 선크림을 바르고, 편하게 입었다. 

얼마 전부터 지은언니가 주말마다 걸어서 15분 거리인 스가모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알바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집을 비운 동안 남편이 배곯고 있을 것같아서(...) 늦잠자던 남편을 깨워 슈퍼에서 간단하게 먹을걸 사서 들려 보내고 걷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좁은 골목길 양 옆으로 야무지게 들어 찬 작은 가게들을 훑었다.

이런 작은 가게들을 어떻게 알고 오는 걸까, 어디나 몇 테이블씩 사람들이 음식을 사이에 끼고 마주보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는 역 바로 뒷쪽에 있어서 금방 찾았다.

정신 없어보이는 언니에게 인사 하고 고사리를 주고 몇 마디 하다가

서로 점심을 안 먹었다는 걸 알고 500엔짜리 정식을 파는 집에 가기로 했다.


아주 오래된 그 식당은 거동도 힘들어보이는 할아버지가 서빙 담당, 할머니가 요리 담당인 곳이었다.

느릿 느릿 우리 테이블로 물컵 두 개를 들고 오며 이가 빠져 새는 소리로 올림픽 피겨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와 손님에게 말 걸 여유도 없을 정도로 피곤해보이는 무표정의 할머니.

전체적으로 '묵었다'는 표현이 딱 맞는 가게 내부는 신경 안 쓰일 정도로만 지저분했다.

나는 500엔짜리 나폴리탄을, 지은언니는 600엔짜리 로스까스정식을 주문했고,

브라운관 TV에서는 방금전 하뉴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같은 뉴스를 네 번정도 보고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나폴리탄에는 길쭉하게 썬 햄과 군데 군데 탄 양파, 그리고 벗겨진 프라이팬 코팅이 버무려져 나왔다.

지은언니가 주문한 로스까스 정식은 그릇 한 구석 겨자 옆에 생닭 조각이 같이 나왔던 걸로 미루어보아 아무래도 치킨까스로 잘못 나온 것 같았다.

식당은 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같은 가격이었나보다.

리뷰에는 중학생때, 고등학생때부터 다니던 가게이며 그때 가격과 같다는 코멘트가 많다고 지은언니가 알려줬다.

우리 할머니는 나폴리탄이나 돈까스같은 걸 만들어주시진 않았지만 할머니 집에 방문한 것 같은 느낌으로 식사를 하고 나왔다.

일본 사람들은 이런 걸 정이라고 느끼는 걸까.

변함 없이 그자리에 있어주는 걸 정이자 의리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가서 이번에는 베게커버를 챙겨 코인빨래방에 갔다.

일본 코인빨래방은 처음이었다.

자판기에서 산 세제를 넣고 동전을 넣자 바로 빨래가 시작되었고, 4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할머니들의 하라주쿠라는 스가모의 상점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평소 일본 슈퍼에선 안 보였던 모과도 팔고(하나에 200엔 정도..) 모찌나 양갱같은 군것질류가 많았다.

상점가 입구 근처에서 미타라시 당고를 보고 하나 먹고싶어져서 언니한테 사달라고 했다.

하나에 100엔인 당고는 안쪽에서 먹으면 녹차도 준다고 한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던 탓에 언니랑 나는 당고를 하나씩 사서 자리에 앉았다.

색이 예쁜 녹차와 고등학교때 이후로 처음 먹는 당고가 서빙됐다.

다음에 남편이랑 오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당고를 먹었다.

정말 평범한 맛인데 왜 그렇게 그게 좋았나 모르겠다.


가게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나 할아버지들은 가끔 손님한테 반말을 하는데

비즈니스 회화나 비즈니스 용어는 그렇게 쓸 데 없이 딱딱하면서 이런 곳에서는 또 반말로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일본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딱 선을 긋고 행동하고 그 선을 점점 더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긋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일본에 와서는 더.

거리를 두고 싶어하면서도 또 외로워하고, 거리를 줄이려는 상대방의 행동은 경계하게 되고, 그러면서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친근한 행동에는 어쩔줄 몰라하는. 사실은 좋은데, 굳이 또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된다.


다시 코인 빨래방으로 돌아가 빨래를 건조기로 옮겼다. 

약 십분 후 대충 마른 베개커버를 폴리백에 담아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덜 마른 베개커버를 소파와 테이블에 널어놓고 지은언니에게 인사하고 집으로 다시 걸어갔다.

올 때보다 훨씬 추워져있었다.

약간 헤매다가 도착했다. 

항상 닫혀있는 모습만 봐서 망한 줄 알았던 카페가 오므라이스를 파는 곳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사람들은 작은 가게마다 꼭 들어서 있었다. 빈 가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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