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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괴로움_아네모네

꽃 사는 여자 2015. 11. 22. 06:39


'괴로운 사랑'과 '사랑의 괴로움'은 다르다.

아네모네의 꽃말이 '괴로운 사랑'이었다면 아마도 이토록 아네모네를 연모(?)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도라지꽃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아네모네를 처음 산 건 상도동의 작은 꽃가게였다.

수업이 끝나면 보통 후문에서 상도역까지 걸어가곤 했는데, 상도역으로 가는 길에 작은 꽃가게가 있었다. 왜 그 집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다가 '꽃을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주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꽃을 손질하고 계셨다.

한 평 남짓한 가게에는 화분과 꽃다발, 다육식물이 빼곡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서 계신 카운터 안쪽에는 바께쓰에 담긴 꽃들이 있었다. 


아마도 겨울이었다. 아네모네 하면 겨울이 떠오르니까.

처음 보는 어린 여학생이 말도 없이 꽃을 보고 있어도 재촉하지 않는 아주머니 너머로 꽤나 괴상하게 생긴 봉오리가 보였다.

치커리?같이 생긴 괴랄한 초록잎이 엘리자베스 카라마냥 꽃봉오리 밑에 자리잡고 있었다.

봉오리에는 솜털이 보송보송 나있고, 색은 아주 촌스럽다면 촌스러운 쨍한 색이었다.

"쟤는 이름이 뭐에요?"

아주머니에게 여쭈어보니 걔가 바로 아네모네란다.

아네모네라라는 뭔가 청순할 것 같고 조금 고지식할 것 같은 이름과는 도저히 매치가 안되는 모습이었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속의 아네모네는 좀 더 청초한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아네모네에 얽힌 신화는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의 사랑, 그리고 제프로스와 아네모네와의 사랑 이렇게 두 가지가 있는데 둘 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아네모네에 관심을 보이자 꽃집 아주머니는 이렇게 생겼어도 피면 아주 예쁜 꽃이라고 설명해주셨다. 

보라색 봉오리와 빨간색 봉오리를 사서 집으로 오면서 아네모네의 꽃말을 검색해보았다.

배신, 속절없는 사랑, 사랑의 괴로움, 허무한 사랑, 사랑의 쓴맛, 이룰 수 없는 사랑

대체로 꽃마다 다양한 꽃말을 가지고 있는데, 아네모네의 경우는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비관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 꽃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랑의 괴로움'이라니. 

괴로운 사랑이 아니고 사랑의 괴로움이라니. 순서의 차이인데 그 사이엔 많은 감정이 얽혀있다. 전자가 사랑의 특성 중 하나를 이야기했다면 후자는 아예 말하는 대상이 달라진다고나 해야할까, 아무튼 사랑의 괴로움이라는 꽃말은 내가 아네모네를 좋아하게 되기엔 충분했다. 




아네모네의 보라색은 정말 예쁜 보라색인데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안 산다...



그리고 나의 결혼식 부케 메인 플라워 역시 아네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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