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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태 - 늑대

문학 2011. 6. 6. 00:05

추운 공기의 냄새가 났다. 토속적인 묘사에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 한 기분도 들었지만 소설의 배경 때문인지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섬세하게 묘사 된 이국의 풍경 탓인가 어딘가 불안한 소설의 분위기 탓인가. 소설은 촌장, 스님, 솔롱고스 사업가, 촌장을 따르는 사내, 허와, 늑대의 각자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문체가 같아 서술하는 인물이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어 처음에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기도 한다.

촌장은 평생을 몽골에 초원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스승으로 삼았던 시절이 옛말이 되어버린 것에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자본화 되어가는 인물이다. 그는 솔롱고스 사업가가 나타난 뒤로 자신의 영혼이 망가져가는 것을 느낀다. 그 망가짐은 자신이 당연하게 소유하고 있던 것들이 수치화 되며 돈으로 환산되고,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이 성스러이 여기던 것이 자본의 힘과 자신의 욕망에 의해 깨져버리는 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자기 환멸의 감정일 것이다. 인간의 삶이 자본 앞에서 어떻게 무력화 되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이 촌장이다. 촌장은 몽골의 광활한 초원의 배를 가르는 검은 아스팔트를 보며 별에게 길을 묻던 시절이 갔음을 느낀다. 이 소설에서 아스팔트는 자본 질서로 제도화된 사회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아스팔트길이 닦이면 이동 수단들은 그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다른 선택은 사라진다. 제도화된 자본사회에서는 모든 것들의 선로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물건을 소유하기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해야한다. 소유는 끊임없는 소유를 갈망하게 되고 그 소유를 향한 방법까지도 자본의 법칙에 의해 제도화된다. 한 번 자본에 물들게 되면 그 굴레를 벗어날 길은 사라진다. 촌장과 함께 솔롱고스 사업가를 돕는 남자는 금기까지 어기며 살생을 범하고 자본 앞에 무력해진 자신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점차 자본의 힘에 종식당할 그들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금기를 어기게 될 것이다.

솔롱고스 사업가와 늑대는 욕망 앞에서 일치한다. 늑대는 그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생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솔롱고스 사업가도 마찬가지로, 그는 그가 가진 재력으로 소유하고 싶은 것들을 닥치는 대로 소유하려 하고, 그 소유에 대한 욕망은 결코 끝이라는 것을 모른다. 검은 늑대를 손에 넣게 되더라도 그는 또 다른 물욕의 대상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의 시점에서 덜 문명화된 초원 사람들의 신앙과 금기는 코웃음 칠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은 이렇게 자본의 제도밖에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허와, 늑대)을 얻지 못한다. 끊임없이 갈망하고 소유하지만 진정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소유하지 못하는 솔롱고스 사업가의 모습은 현 시대를, 그리고 너무나도 강력한 자본만능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소설에서 유일하게 때 묻지 않은 것이 있다면 허와와 치무게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려 하는 찰나 총의 방아쇠는 당겨진다. 제도에 속하지 않은 존재는 제도에 속한 존재의 손에 희생당한다. 허와와 치무게의 사랑은 자본 앞에 힘없이 스러지는 가장 상징적인 가치이다. 이러한 결말을 통해 작가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소유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소설에는 짙은 한숨이 베여있다. 취직을 위해 토익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암기하는 나에게 작가가 묻는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한숨 쉬며 길들여질 것인가 몸부림이라도 쳐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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