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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 맨홀

문학 2011. 5. 31. 00:41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소설을 쓸 수가 있구나. 그것도 담담하게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불쾌한 신선함을 느꼈다. 고름이 낀 눈의 C가 입을 열 때면 그 고약한 악취가 글씨를 타고 흘러나와 잠시 숨을 멈추게 했다. 느껴졌다. 참 지독한 작가구나 싶었다. 마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라고 하는 것 같았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가라고 하는데. 이 글을 읽고 감상문까지 써야한다니, 마음이 불호 쪽으로 상당히 많이 기울어버렸다. 네 번을 읽어도 여전히 기분 나쁜 불확실함만이 찜찜하게 남았다. 다른 학우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서경식의 <고뇌의 원근법> 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한 대목이 확대되어 동공에 꽂혔다.

루마니아 등지에서는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고아들이 하수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고뇌의 원근법> p.70, 서경식, 돌베개, 2009

고아, 하수도, 루마니아. C와 나, 맨홀, 에스키모 장화와 순록가죽옷. 이 이야기의 배경과 내가 상상하는 과거 구소련과 동유럽의 풍경이 점점 닮아가는 것 같다. 수많은 장치를 배치해놓은 이 소설에서 가장 특이하게 느껴졌던 것은 이름의 표기법이었다. 알파벳 한글자로 표기한 이름과 불친절하게 묘사만 되어있는 지역은 소설의 배경을 흐릿하게 만들어놓았지만 저 대목을 발견 한 후, 하나씩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숨을 몇 십초 동안 참고 있다가 마침내 푸하앗, 뱉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독자에게 모호함을 주고 싶은 것이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경계의 모호함에 답답함을 느끼는 나로서는 소설의 현실인지 악몽인지 모를 배경 때문에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없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는 항상 모호했고 어떤 것이 현실이며 어떤 것이 가상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현실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지금도 알 수 없다. 내가 있는 공간은 수조속이다. 물속에 잠긴 채로 물 밖의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잠겨있는 수조와 외부의 풍경은 나뉜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또 같은 공간도 아니다. 그 공간의 경계는 항상 모호하고 나는 그 모호함 속에 잠겨있다. 고 항상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 속 배경의 모호함, 결론 부분의 모호함이 오히려 내게는 지나치게 다가왔다. 그저 악몽 같은 이야기만으로 치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불편했던 것은 아닐까. 그 모호한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인물들이 눈을 뜨고 꾸는 악몽은 뚜렷한 배경의 그들이 당하는 현실보다 끔찍하다. 그들은 더럽고 병들었으며 급기야 박제당하고 해부 당한다. 삶에 대한 본능적 집착으로 맨홀에서 살고 남의 여자와 맨홀을 뺏는다. 쥐는 강한 번식력과 생명력을 가진 동물이다. 그들은 마치 시궁쥐와도 같다. 하지만 그들의 몸은 마치 제 2차 세계대전의 한 풍경과도 같이 과학자들에 의한 인체실험의 재료가 된다. 아무리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다 해도 결국엔 그들보다 상위계급에 속한 이들을 위해 희생당하고야 만다, 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걸까. 그들은 과연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레밍이 눈의 붉은 끼를 거두듯 박제당하고 해부당하며 그들 눈의 붉은 끼를 훌훌 털어내게 되는 걸까. 삶에 대한 집착의 끝에는 죽음뿐인 걸까. 작가는 수많은 장치와 의도들을 소설에 배치시켰지만 그 하나하나를 같은 줄에 놓고 꿰기란 참 힘들다. 나는 작가가 이곳저곳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내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기를 바라고 읽었지만, 찾아낸 보물들을 모아봤을 때 그것들은 각기 뜻을 담고 있을 뿐이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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