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17

끄적임 2018. 2. 17. 03:34


그친구는 영영 사라졌다.


몇 번을 사라졌다가 나타나던 그친구는 눈이 컸다.

쓸데없이 큰 눈에 까만 눈동자, 붓으로 그린 듯한 절묘한 곡선의 짙은 눈썹.

큰 눈에 비해 작은 코, 그리기 쉬울 것 같은 둥그런 입술.


가난이 서럽던 그친구는 블로그에 참 좋은 글을 쓰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그친구의 글은 따뜻했다. 나는 그 감성과 시선과 글재주가 늘 부러웠다.

그래서 블로그를 터트릴 때마다 늘 그친구보다 아쉬워했다.


그래도 눈 앞에서 사라지지는 않았다.

연락하면 받았고, 부르면 나왔고, 함께 웃었다.

물론 웃었던건 나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그리워했다.

고향에 남은 엄마를 늘 생각했고, 애틋하게 여겼고, 가엽게도 여겼다.

고향에서 엄마와 함께 평범하게 살고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에 한창이던 우리는, 그친구는 특히 더 괴로워했다.

누구나 그 시간을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그친구는 겨우 겨우 숨 쉬고 있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아마도 그랬던것 같다.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잘 웃는, 그래서 더 미안한 사람.


졸업 후 고향에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입으로 입사한 지 몇 달이 지나고 한참 새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질서에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던 어느날

고향에서 잠시 서울로 올라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랜만이야.

너 왜이렇게 살쪘어 닌자거북이 같아.


서촌에서 만났다.

우리는 종로를 좋아했다.


아직 돈벌이를 못 하고 있는 그친구에게 나는 속없이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털어놓았고

그친구는 마치 자기 일처럼 들어주었다.


그 후로 그는 영영 사라졌다.

내 삶에 한 발 들여놓지도 않겠다는 듯이 사라졌다.

나는 그를 찾지 않았다.

핸드폰을 없앴을지도 모르지, 항상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했으니까.


그를 찾는 대신 그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엄마와 소도시의 작은 집에서 살면서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 없는 작은 회사에서 하루 하루 할당량의 노동을 하면서

어느날 퇴근길엔 치킨을 사들고

작은 집에 와 티비 앞에 엄마와 나란히 앉아 치킨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가끔은 크게 웃을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견뎌내면서

아무렇지 않지만 소중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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